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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국외 교육실습 소감 발표(3명)
작성자 통합관리자 작성일 2009.06.03 조회수 3606

교육실습 소감문

 

소속 : 중앙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육학과 국어교육전공
실습생 : 이선미
실습기간 : 2009. 4. 27 ~ 5. 22.
실습학교 : 천진한국국제학교
실습과목 : 국어

대륙을 향해 꿈을 펼치다.

 1. 우연히 잡은 기회.

 작년 11월. 우연히 학교 게시판을 통해 처음 해외실습에 관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 그 소식을 접했을 때의 흥분과 설렘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평소 독일이나 미국 등 해외 교육현장을 직접 둘러보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었기에 이런 기회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난 충분히 설레었다. 임용시험을 앞두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약간 망설여졌던 것이 사실이나 그래도 다시 갖지 못할 기회라고 생각해서 지원하였다.

2009년 상반기에 해외실습이 가능한 학교는 모두 세 학교였다. 한 곳은 한국국제학교였고, 나머지 두 곳은 조선족 학교였다. 물론 학교 선택의 기회는 내게 없었지만, 그래도 세 학교를 두고 혼자 고민했었다. 중국에 연고도 없고, 전혀 아는 바가 없는 나였지만 그래도 천진이라는 곳은 낯설지 않았기에 그래도 좀 더 큰 도시로 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다. 사실 한국과는 다른 중국의 교육현장을 체험하려면 조선족 학교에 가야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짧은 생각이었던 듯싶다. 신기하게도 나의 바람대로 천진한국국제학교에 배정을 받았고, 총 12명의 선발 인원 중 나를 포함한 두 명이 천진한국국제학교에 가게 되었다.

2. 천진한국국제학교를 소개합니다.

중국으로 교생실습을 간다는 사실을 알고, 주위 사람들이 내게 제일 많이 한 질문이 “누굴 가르쳐?”, “ 어떤 과목을 가르쳐?”였다. 심지어 같은 과에는 내가 중국어를 잘한다는 잘못된 소문이 돌기도 했다. 중국어는 인사말밖에 하지 못하는 내가 중국으로 교생실습을 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인에게 국어를 가르치러 갔기 때문이었다.

천진한국국제학교는 교육부 정식인가를 받은 국제학교이다. 따라서 한국과 같은 7차 교육과정으로, 또 비슷한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천진한국국제학교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은 한국에서 파견 나가신 분들이고, 또 일반 선생님들도 다 현직 교사들로 고용휴직 중이신 분들이다. 따라서 한국과 거의 다를 바 없는 환경을 갖추고 있다.

2001년에 개교하여 현재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운영되고 있고 한 건물 안에 초등, 중등, 고등이 함께 있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교육 실습생에게는 중등학교와 고등학교의 수업은 물론 실무까지도 모두 참여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물리적 환경은 매우 열악하였다. 현재 중국학교 건물 일부를 빌려 운영 중이라 사정이 더욱 좋지 못하다. 학교 전체에 풍기는 소독약 냄새, 좁디좁은 교무실은 말할 것도 없고 학교 구석구석 남는 공간이 전혀 없어 교생은 발을 들여놓을 수도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우린 외딴 건물 양호실에 거처를 마련해야 했다. 여하튼 물리적 환경은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막 입학했을 때의 환경보다 훨씬 더 안 좋았다는 것만을 이야기하고 싶다. 하지만, 올해 10월에 이전할 예정에 있다. 아마 다음 교생실습을 가시는 선생님부터는 좋은 환경에서 실습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초등, 중·고등이 함께 있기에 수업시간은 40분씩으로 통일되어 있고,(수업종의 문제 때문이다.) 대신 9교시까지 있다.(6교시는 점심시간이다.) 급식 역시 초등과 함께 있기 때문에 중·고등은 5교시 이후에 점심시간을 갖는다. 이 역시 식당이 비좁아 한 달씩 중등과 고등이 번갈아 가며 점심을 먼저 먹는다.

이곳에 다니는 학생들 대부분은 아니 전부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대학에 진학한다. 따라서 한국의 7차 교육과정을 따르되 그 부분을 염두에 두고 특화되어 있는 교육과정이 몇몇 눈에 띈다. 외국어 수업의 강화가 그 첫 번째이다. 무엇보다도 영어 수업 커리큘럼이 참 좋다. 이 학교 아이들은(중등의 경우) 영어회화, 영어작문, 영어독해를 공부하게 되는데 이 중 영어회화랑 영어작문은 원어민 선생님께, 영어독해는 한국인 선생님께 수업 받도록 되어 있다. 모두 수준별 수업으로 총 네 개의 수준으로 나누어져 있다. 따라서 아이들은 좀 더 밀도 높은 영어수업을 받을 수 있다. 이 덕분에 이곳 아이들은 대부분은 영어 능력이 한국아이들과 비교해서 좋은 편이다. 이학교의 이러한 커리큘럼은 영어 교생실습을 하는 학생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한어도 영어와 비슷한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다.

두 번째는 국어과목의 세분화이다. 한국 중학교에서는 일주일에 4시간‘국어’를 배운다. 하지만 이 학교에서는 일주일에 4시간씩‘국어’를 배우는 것 외에도 일주일에 3시간씩‘독서와 논술’을 배우도록 되어 있다. 논술의 중요성이 계속해서 회자되는 가운데 한국에서는 방과 후 수업 등을 통해서 말고는 논술 교육을 시도해 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부족한 시간 때문이다. 도저히 ‘국어’수업 시간 내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몫을 고스란히 사교육이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이곳 천진한국국제학교에서는 공교육에서 당당히 논술수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커리큘럼은 천진한국국제학교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닌가 싶다.

3. 4주간 치열했던 나의 고생실습.

누군가가 그랬다. 교생실습은 교생실습이 아니라 고생실습이라고. 이 얘기를 처음 듣고 얼마나 웃었던지. 아마 교생실습을 나가기 전에 들었으면 그래? 했을 이야기에 그토록 웃을 수 있었던 것은 그 말이 절절히 와 닿을 무렵 그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나의 교생실습이 고생실습이 되어버린 것은 사실 예정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한국에서 교생실습을 해도 되는데 굳이 중국까지 갔으니 말이다.

아시아나 항공을 타고, 4월 25일 한국을 떠났다. 교감선생님과 영어선생님 한 분이 공항으로 마중을 나와 주셔서 학교까지 힘들지 않게 올 수 있었다. 우리가 묵을 숙소는 연구부장 선생님 댁으로 한 달간 홈스테이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연구부장 선생님 댁은 학교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학교 선생님과 다른 한국인이 많이 사는 아파트였다. 그렇게 그 주 토요일, 일요일은 여러 선생님의 배려로 천진 시내 구경을 하고, 미리 선생님들을 만나 식사를 하며 보냈다.

실습이 시작하는 월요일. 부푼 가슴을 안고 출근했다. 교사를 꿈꾸는 모든 이에게 교생실습은 하나의 로망이 아닌가? 나 역시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가지고 나만 바라볼 아이들을 생각하며 한껏 부푼 기대로 출근을 했다. 나는 과목은 독서와 논술, 담임은 2학년 2반을 맡게 되었다. 2학년 2반은 이 학교를 통틀어 가장 악명 높은 반이었다. 보시는 선생님들마다 어떡하면 좋으냐는 말씀만 하셨다. 대체 어느 정도일까 궁금했는데, 정말 첫 날 교무실에 있는 내내 몇 명의 과목 선생님이 오셔서 담임선생님께 하소연을 했는지 모르고, 몇 명의 아이들이 불려왔는지 모른다. 그런 악명 높은 반에 배정된 것도 다 운명이었다고 생각한다.

첫 주는 주로 교장 선생님, 교감 선생님, 각 부 부장선생님과 면담 시간을 갖고 학교 전반과 선생님들이 하시는 업무 전반에 대해 익혔다. 반 아이들에게 간단한 인사도 하고, 현장학습도 다녀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참 어색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아이들은 생각보다 더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천진한국국제학교에는 우리가 첫 교생이었던 터라 애들이 교생이 뭔지도 잘 몰랐기 때문이다. 금요일은 노동절 휴일이었기 때문에 첫 주는 그렇게 분위기 정도만 익히고 끝이 났다.

나의 과목이 독서와 논술임은 앞서 밝혔다. 독서와 논술 과목은 특이한 것이 교재가 따로 없었다. 교재 편찬은 매 시간 담당 선생님의 몫이었다. 정말‘이럴 수가!’였다. 이건 학교 전체를 통틀어 최악인 반을 만난 것보다 더 심한 고통을 내게 안겨주었다. 매 시간 수업을 할 때마다 교재를 직접 만들어야 하다니. 담당 선생님께서 직접 해볼 것을 권유하셨다. 수업은 바로 그 다음 주 목요일부터 시작이었다. 논술은 사실 내게도 부담인데. 그래서 첫 주는 많은 논술 카페에 가입하고, 교육청 홈페이지와 많은 교육관련 사이트를 오가며 자료수집만을 했다. 이것이 나머지 3주 동안 수업 준비하는데 정말 많은 도움이 됐음을 미리 밝힌다.

2주차. 본격적으로 수업 참관을 하고, 실제 수업을 시작했다. 이 학교의 큰 장점 중에 하나는 앞서 언급했지만, 중·고등학교가 함께 있어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수업을 참관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중·고등 합하여 총 5분의 국어선생님이 계신데 이 분들의 수업을 골고루 참관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많은 선생님들의 수업을 참관하는 것은 아직 자신만의 교수법이 확립되지 않은 교육 실습생에게 참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선생님들은 각기 다른 교수법들을 가지고 있고, 그것은 이론으로 배우는 것이랑 또 다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 시간들을 통해 참 많이 배웠다. 예를 들어 민태윤 교감선생님의 수업의 경우, ‘열린 교재’가 무엇인지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수업이었고, 김지영 선생님의 수업의 경우 읽기 수업을 어떻게 하면 좀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볼 여지를 갖게 해준 수업이었다.

하지만, 수업 참관을 하며 내가 느꼈던 기분은 무엇을 배운다는 기쁨과 더불어 막막함도 컸다. 이 아이들을 과연 내가 잘 가르칠 수 있을까. 정말 이 아이들과 내가 수업을 할 수 있을까. 참 막막했다. 내가 보기에 중·고등학교를 막론하고 어느 수업이든 수업이 다소 무질서해 보였고, 또 뒤에 서서 있다 보니 수업을 듣지 않는 아이들이 크게 눈에 띄었다. 수업을 참관하며 자꾸 이런 상황에서 난 어떻게 해야 할까? 저런 상황에서 또 어떻게 해야 하지?를 고민하다 보니 그냥 머릿속으로 점점 더 막연해져 급기야 모든 것이 자신 없어졌다.

그래서 첫 수업을 하기 전 특히 더 많이 고민했다. 첫 수업은 악명 높은 우리 반(2학년 2반) 수업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5총사가 과연 수업 시간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을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를 가장 많이 고민했다. 그래도 나는 교생인데, 아이들에게 싫은 소리하면서 미움 받는 교생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수업을 안 듣고 자거나 떠드는 아이를 마냥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수업에 들어가서 종이 쳤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반 창틀에 매달려 장난치는 옆 반 아이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지름으로써 모든 고민이 말끔하게 사라졌다. 이 때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질러버린 통에 그 수업 내내 아이들이 모두 눈을 말똥말똥 뜨고 내게 집중을 해주었다. 아마도 내가 교생이라 애들도 신기한 맛에 더 집중해줬던 듯싶다. 아무튼 그 수업을 시작으로 고맙게도 교생실습을 마치는 내내 우리 반 아이들은 내 수업 시간에는 별 탈 없이 열심히 들어줬다. 그 유명한 5총사마저도.

2주차에는 반 아이들 상담도 시작했다. 아침 자율학습 시간을 이용하여 복도에서 아이들 한명 한명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수업보다도 상담은 더 처음이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더군다나 일대일이니 그 어색함은 정말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미리 아이들 가정환경 조사서랑 학기 초에 쓴 자기소개서를 읽고 갔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냥 인사하고, 이름 정도 외우고 얼굴 익히는 것에 만족하기로 하고 반 아이들 전체 상담을 일단 한 번 빨리 끝낸다는 기분으로 했다. 목요일까지 전부 마칠 수 있었고, 이 덕분에 아이들 얼굴과 이름을 모두 외울 수 있었고, 나를 조금 더 알릴 수 있었다. 우리 반에는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가 한 명 있었는데, 담임선생님께서 특별히 그 아이와 많은 상담을 해보라 하셔서 금요일부터 틈틈이 그 아이와 개별 면담 시간을 가졌다.

이렇게 2주차가 지나갔다. 2주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아이들 얼굴이랑 이름을 겨우 외운 정도여서 빨리 가는 시간만큼 내 마음도 조급해졌었다.

3주차. 본격적으로 일주일 내내 수업이 꽉 차 있었다. 중학교 1학년과 2학년 수업만 했기에 일주일 내가 해야 하는 수업 시수는 12시간이었다. 첫 주에 열심히 찾아 놓은 자료로 본격적으로 교재를 만들고 수업을 했다. 파워포인트라고는 학부 때 컴퓨터 시간에 배워본 실력이 전부인데. 그것도 너무 까마득해서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하지만, 닥치면 다 가능하다. 기억을 더듬거려 파워포인트를 이용해 수업 자료도 만들고, 혹여 아이들이 지루해하고 재미없어 할까봐 매 시간 수업 관련 짧은 동영상도 준비했다. 처음으로 동영상 다운도 받고, 인코딩이라는 것도 해보고... 읽기 자료 편집은 물론 지도안도 작성하고, 하루하루 수업 준비하는 과정이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참 즐겁게 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새 교재 만드는 일에도 익숙해지고 아이들과 수업하는 것도 즐거워졌다. 맨 처음 수업했을 때는 너무 얼어서 아이들과 주거니 받거니 수업을 한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할 말을 아이들에게 몽땅 다 쏟아놓고 교실을 나와 버렸다. 나와서 얼굴이 얼마나 화끈거리던지. 그게 계속 마음에 걸려 그 날 내내 마음 안 좋아 했었다. 그런데 어느새 적응이 되어서 아이들과 농담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웃으며 즐기며 수업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참 좋았다. 하지만 때로는 준비 많이 했다고 자부하고 수업에 들어갔다가 생각보다 주제에 아이들이 재미를 못 느껴 별 반응이 없어 김이 빠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날이면 꼭 실습록에 반성문을 한가득 썼었다. 그러고 보면 실습록이 참 좋은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늘 수업을 반성할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해주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중에 정말 교사가 되어서도 이어가고 싶은 습관이다.

3주차가 되어 학생 상담 방식도 바꿨다. 일대일 상담을 하며 느낀 것이 아이들도 어색하고 나 역시 어색해서 결국 내가 피상적인 질문을 막 던지고, 아이들은 그저 예/아니오 정도의 대답만 한다는 것이다. 물론 선천적으로 밝은 아이들 몇몇과는 그런대로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었지만, 대다수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단 상담을 해보기로 했다. 친한 친구들과 함께 만나면 그래도 더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겠냐는 취지였다. 그래서 3~4명 정도 친한 친구들끼리 짝을 짓게 하여 상담 스케쥴을 월요일부터 그 다음 주까지 새로 짰다. 아침자습시간과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한 팀씩. 상담 내용도 좀 더 깊이 있게 들어가기 위해 미완성 문장 20개를 준비하여 아이들이 먼저 쓰고, 그 안에서 이야깃거리를 찾았다. 이것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덕분에 새침하던 여자아이들도 많이 마음의 문을 열었고, 전체적으로 아이들과 가까워지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비록 상담시간 20분이 넉넉하지 못해서 생각보다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지만, 그들에게 나는 어느새 노력하는 교생선생님이 되어 있었다. 사실 이때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정말 몸이 부서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수업 준비는 수업 준비대로 고되고, 학교에서 자투리 시간인 아침 자습시간과 점심시간을 한시도 쉬지 못하고 아이들과 상담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력한 만큼 아이들과 더 많이 가까워질 수 있었다. 지금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이렇게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모자라 아이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주지 못하고 돌아왔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슬슬 연구수업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교생이 두 명 뿐이었기 때문에 두 명 모두 연구수업을 하기로 했다. 사실 연구수업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그냥 평소에 수업하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평가받고 싶었다. 하지만 이것도 한 번 밖에 없는 기회니 이 때 다양한 것을 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지도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래서 모둠활동을 한 번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그래서 이 주에 모둠을 나누고 활동사항 안내하고, 모둠장 따로 불러 계획서 받는 일까지 마쳤다. 연구수업을 한다고 2반 아이들만 가지고 모둠활동을 한 것이 아니라 2학년 전체, 그러니깐 1반과 2반 모두 같은 활동을 했으므로 일이 좀 더 커졌다. 모둠활동을 계획하고, 진행하고 점검하는 것까지 이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보통 모둠 활동은 적어도 한 달의 여유기간은 두고 진행해야 하는 것인데 일주일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모둠활동을 시작하여서 이 부분이 아이들에게도 가장 못할 짓이었고, 힘들었던 부분이었던 것 같다.

4주차. 시간이 정말 어떻게 지나가는지 보이지도 않더니 어느새 마지막 주가 되었다. 이 주도 목요일 연구수업을 하기 전날인 수요일까지 수업이 있었다. 집단 상담도 원래 있던 대로 화요일까지 진행되었다. 막바지 모둠 활동을 점검하고, 1반에서 같은 내용으로 수요일에 수업도 해보았다. 1반 수업 때는 여러 가지 준비가 미흡하여 수업이 매끄럽게 진행되지 못했다. 그것을 참고하여 목요일 연구수업 준비를 하였다. 드디어 목요일. 별로 안 떨릴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수업이 시작되니 무척 떨렸다. 아이들도 많이 떨렸던 모양이다. 평소에도 열심히 들어줬지만 이 날은 더 열심히 수업에 참여해줬다. 오히려 나보다 발표도 잘하는 아이들 모습을 보며 점차 안정감을 되찾았고, 무사히 수업을 마칠 수 있었다. 연구수업이 끝나고 나니 정말 나의 교생실습이 모두 끝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날 오후, 수업을 모두 마치고 평가회가 있었다. 갑작스런 회의로 인해 많은 선생님들이 오시지는 못했지만, 오셨던 선생님들께서 따끔한 지적과 충고, 또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이제 막 교사로서 걸음을 떼려는 내가 얼마나 많이 부족한지 알기 때문에 한 말씀 한 말씀이 그저 감사했다. 또 격려도 잊지 않으셨다. 이 날 들었던 많은 이야기들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이 말씀들을 마음에 새기고 앞으로 교직생활을 할 때에 밑거름으로 삼아야겠다.

마지막 날. 교생실습 마지막 날까지 수업을 했다. 기특하게도 우리 반 아이들이 수업하길 원했기 때문에 나 역시 기쁜 마음으로 마지막 수업을 했다. 원래 연구수업으로 계획한 수업이 3차시 분이었고, 연구수업 한 부분이 그 중 2차시 수업이었다. 우스갯소리로 연구부장 선생님께서 나머지 1차시 분 수업하고 가라고, 논술 수업 시간 없으면 금요일 1교시 2반 수업인데 그 수업 주시겠다고 하셨는데, 정말 그 수업 시간에 수업을 했다. 수업해주세요~하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그 어떤 말보다 달콤하다는 사실, 이때 처음 알았다.

이것으로 4주차의 고생실습을 마쳤다. 감사하게도 멀리까지 와서 교생실습 한다고 학교 안에 계신 모든 선생님들께서 관심 가져 주시고 격려해주셨다.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중국에서 교생실습을 했기에 다른 곳에 한 눈 한번 안 팔고 정말 열심히 교재연구만 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한 달 동안 텔레비전 한 번을 본적이 없다. 그래서 참 뿌듯함으로 가득한 교생실습이었다.

4. 내가 발견한 보물.

교생실습을 나가기 전에 여러 번 고민했었다. 과연 이 길이 내 길인지에 대해. 난 중학교 때부터 국어교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왔다.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기에 그 사이 고민의 시간도 남보다 길었다. 이번 실습은 내게 이 길이 얼마나 가치 있는 길인지, 이 길이 나에게 얼마나 잘 맞는 길인지 보여주었기에 참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학교 붕괴니 뭐니 말들이 많지만, 학교는 학교고,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우리 반이 정말 문제아들이 많았고, 전체적으로도 반 분위기 제일 안 좋기로 소문난 반이었지만 내가 만난 아이들 한명 한명은 정말 다 순수하고 어여쁜 아이들이었다.

또, 실습 나가기 전에 많이 걱정했던 부분 중에 하나가 내가 과연 수업을 잘 할 수 있을까? 였다. 이 부분에 있어서도 참 많은 자신감을 얻었다. 열심히 준비하는 가운데 실력이 늘어 얻은 만족감도 있었지만 아이들로부터 내 수업이 좋다는 피드백을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여기서 배운 것은 선생님이 교재연구를 하면 할수록 또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아이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자유롭게 교재를 선택할 수 있었던 나의 특수한 상황에서 기인한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 정해진 틀 안에서 정해진 내용을 가르칠 때 이것이 얼마나 비슷할지는 모르겠지만 그것 역시 교사가 투자하는 시간에 비례해 질 좋은 수업을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오히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논술 수업이었기에 교재를 처음부터 끝까지 준비하면서 많은 내공이 쌓인 듯하다. 그래서 참 감사하다.

5. 해외교생실습을 고민하고 있는 여러분께.

해외교생실습을 고민하고 있는 여러분께 가장 해드리고 싶은 말은 무엇 때문에 교생실습을 해외로 가려는지 그 이유를 잘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사실 천진한국국제학교 같은 경우 한국에서 교생 실습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비슷은 하지만, 실제 한국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그곳 학교 선생님들의 지배적인 의견이었다. 또 분명한건 한국에서 실습하는 것보다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훨씬 더 많이 힘들고, 비용도 많이 든다.

하지만 다른 이유로 해외실습이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면 적극 추천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한 단계 더 성숙할 수 있었던 좋은 계기가 되었고, 또 분명 그 나름대로 얻는 것도 잃는 것도 전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얻는 것을 어떻게 잘 활용할 줄 아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선택의 순간이 온다고 해도 주저 없이 선택할 해외실습의 기회, 분명한 것은 흔치 않은 기회라는 것이다.

첨부파일 교생실습 소감문(영길조중).PDF
교생실습 소감문(길림조중).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