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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교육실습 소감발표
작성자 통합관리자 작성일 2008.12.15 조회수 4738

교육실습 소감발표

 

 

소 속 : 중앙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육학과 물리교육전공

실습생 : 최용준

실습기간 : 2008.10.6 ~ 11.1

실습학교 : 서운중학교

실습과목 : 과학(물상, 지구과학)

 

2006년 9월 중앙대학교 교육대학원에 입학하여, 이제 마지막 학기인 5차 학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많이 배우고 많은 것을 경험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학부를 졸업하고 학원에 다니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적성에 맞는다 싶어서 교육대학원에 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학부도 창원에서 나오고, 고향집도 창원이라 서울에 와서 공부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니, ‘오기를 잘 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학부에서는 물리학을 전공했지만, 교육학을 배워본 적은 없습니다. 교육대학원에 와서 전공과목도 배웠지만, 교육학을 배운 것은 정말 제게는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이해하는 일이, 결코 쉬운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아이들의 특성을 파악하는 일이 매우 중요한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생실습을 통해 이론적으로만 알고 있던 것들을 몸소 배우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원래는 보통 1학기 때, 교생실습을 나가는 것이 통례인데, 저는 실험실 일로 교생실습을 2학기 때 나가게 되었습니다. 1학기에는 대학원에서 학교를 정해주지만, 2학기 때는 자신이 스스로 알아서 교생실습 나갈 학교를 구해야만합니다. 하지만 보통 학교들이 1학기 때 주로 교생실습생을 받고, 자교의 졸업생만을 받기 때문에 교생실습 나갈 학교를 구하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어느 선생님은 100군데에 전화를 했더라는 이야기도 전해듣고는 했습니다. 저도 교생실습 나갈 학교를 쉽게 구하지 못해 거리가 먼, 부천소재의 실업계 고등학교로 교생실습을 나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습니다. 거리가 멀기도 멀지만, 야간학교라 교생실습을 나가는 것이 많이 망설여지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교생실습을 나갔다 와야지만 졸업을 할 수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요. 그런데 5차 학기가 시작되고, 교생실습을 얼마 앞두지 않은 시점에서 화요일 수업인 ‘교생실습’ 수업을 해주시던 서운중학교의 조정순 교장선생님께서 자신의 학교에 교생실습을 나오지 않겠냐며 전화를 주셨습니다. 강남역 부근이라 거리도 가깝고 환경도 좋은 곳이라 배울점도 많겠다는 생각에 부천실업고등학교에 양해를 구하고 서운중학교로 교생실습을 나가기로 하였습니다. 원래 서운중학교는 교생실습을 받은 적이 없어 저의 경우는 이례적인 일이었고 교생실습을 하는 학생이 저 혼자라 조금은 부담을 가지고 교생실습을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10월 6일부터 11월 1일까지 교생실습을 하였고 그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1. 학생지도

(1)교문지도

교생실습이 이틀 지난 시점에서 지도선생님이시던 과학과 전진영선생님께서 교문지도를 한 번 해 보지 않겠냐며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아이들과 서먹하기도 하고 아침에 교문에 서 있으면 전교생을 다 볼 수 있으니, 친해지는 계기가 되겠다 싶어 교문지도를 해 보겠다고 선뜻 나섰습니다. 아침 7시 15분에 학교에 도착하여 7시 30분 쯤 교문지도를 시작하였습니다.학생지도부의 남자 선생님 두 분과 아침부터 아이들의 복장상태며 두발지도까지 하게되었는데, 1학년 아이들은 대부분이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지 모두들 모범생분위기가 났는데, 2학년과 3학년은 불량한 아이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교문 앞에 잡아두면 다른 아이들에게 부끄러움을 느낄만도 한 일일텐데,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서있는 아이들이 조금은 낯이 두껍구나란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월요일에는 실내화 검사를 하는 날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실내화를 주말동안 빨아서 깨끗한 상태를 확인하고 불량한 아이는 교문 앞에 세워두고 이름을 적어 학생생활 점수를 체크 하였는데, 다들 알고 있듯이 강남의 환경 좋은 아이들이라 그런지 대부분의 아이들이 실내화 상태가 깨끗하였습니다. 실내화 상태만을 보는 것만은 아니라 복장, 두발 검사를 하였는데, 이름표는 오바로크를 해서 달고 다니기 때문에 안 달고 다니는 아이는 거의 없었습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아크릴 이름표를 달고 다녀야 해서, 잊어버리고 못 달고 학교에 간 날은 학생지도 선생님께 많이 혼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 학창시절에는 모든 학교들이 요즘 아이들이 칭하는 일명 ‘반삭’이라는 머리를 하고 다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런 머리스타일을 ‘스포츠’머리라고 칭했었늗데 머리가 조금이라도 길다 싶으면 선생님께 가위로 머리를 잘리는 수모를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머리길이가 자유로운 편이라 어느 정도는 기르고 다니기도 하는데, 정말 이건 아니다 싶을 정도로 두발 상태가 불량한 아이도 간혹 있었습니다. 그런 학생들도 예외 없이 교문에 서서 학생생활 점수를 체크했습니다. 여자 아이들의 교복 또한 문제가 되기도 했는데, 치마 밑단을 너무 올려서 미니스커트 처럼 만들어 입거나, 치마 주름을 뜯어서 멋을 부리고 다니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예전에도 그렇듯 소수의 겉멋을 부리는 아이들이 꼭 있기는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남자 아이들은 급격하게 성장할 나이라 그런지 교복이 너무 작아진 아이들도 간혹 있었습니다. 강남의 아이들이라 그런지 복장 상태가 다들 깔끔하고 단정한 편이었습니다. 간혹 썬크림을 바르거나 화장을 하는 과도하게 멋을 부리는 여자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교문지도라는 것이 학생들의 직분에 맞는 바른 복장과 자세를 지니고 학교에 오는지를 검사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 보다는 편해진 환경으로 불량한 학생은 그리 많지 않고 선생님의 말씀도 다들 잘 듣는 편이라 기분 좋게 교문지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2) 급식지도·점심시간 1학년 생활지도

점심시간 급식지도를 해보기도 하였습니다. 급식지도는 단순히 아이들이 밥을 먹는 식당 안으로 질서 있게 입장하도록 지도를 하는 것인데, 아이들 스스로 질서를 지키며 급식을 받게끔 하는 일은 쉽지 않기에 아이들을 선생님이 직접 통제하여 급식지도를 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급식지도만이 아니라, 점심시간에 1학년 통제를 매일 하였는데, 초등학교를 졸업한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아이들이라 장난도 심하게 치고 다치는 아이들이 발생하지 않을까하여 몇몇의 선생님들이 항상 점심시간이며 쉬는 시간에 아이들을 지도하였습니다. 급식을 받는 것은 너무 많이 기다려야하니 밥을 먹지 않는 아이들을 식당으로 보내고, 복도에서 뛰는 아이들, 서로 싸우는 아이들을 통제하고 지도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3) 상담지도

아이들 개개인의 특성을 파악하고자 생활기록부도 보고, 담임선생님께 아이들 하나하나의 성격과 특성을 들었습니다. 사실 현장에서의 지도 경험도 없거니와 아이들의 특성을 빠른 시간 안에 파악하는 일은 매우 힘들었습니다. 매일 지각을 하여 담임선생님께 꾸중을 듣던 여자 아이와 맨 처음 상담을 하였습니다. 지각의 이유를 물으니 늦잠을 자는 이유이고, 그에 따른 선생님의 꾸중이 듣기 싫고, 아이들이 보기에 부끄럽지 않느냐는 질문에 상관 안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춘기에 접어들어 반항심이 크지만 혼자 불러 얘기를 하니 아이답게 자신의 잘못을 수긍하기도 하였습니다. 다음부터 다시는 늦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그 다음날 일찍 등교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날 이후로는 일찍 등교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지만 사실 요즘 아이들은 다 그렇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하루뿐인 약속이 되었지만 하루라도 약속을 지키는 모습이 조금은 대견스러워 보였습니다.

그 다음으로 상담한 아이는 반항심이 강하고 폭력적인 남자 아이였습니다. 처음 본 날부터 팔목에 붕대를 감고 있었고, 왜 그랬냐고 물으니 책상을 내리치다가 그랬다고 합니다. 사실 아이들이 싸우기도 하고, 장난도 심하게 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화가 나서 책상을 팔목이 다칠 정도로 세게 내리쳤다는 얘기를 들으니 걱정이 되었습니다. 모자랄 것 없는 환경에서 자라 아이가 그리 나쁜 인상을 주는 것도 아닌데 무슨 이유에서 그랬을까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한창 자라날 나이고 사춘기 때라 그러려니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청소시간에는 혼자서 청소도 하지 않고, 점심시간에는 밥도 잘 먹으러 가지 않는듯 보였습니다. 담임선생님께서도 그 아이가 말을 정말 안 듣는 편이라고 말씀하시고, 그래서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상담을 마쳤습니다. 사실 교생실습을 나가 있으면서 유독 말을 듣지 않아 저로서도 난감한 상황을 많이 겪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 아이이기도 합니다. 예전 선생님 말씀이 ‘말 안 듣던 아이들이 기억에 오랫동안 남는다.’는 말이 왜 그런지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왕따’라고 해서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부각되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 그래도 제가 교생실습을 나간 서운중학교에서는 그런 아이들이 없고 학교분위기도 좋아서 교생실습을 나가 있는 동안 마음 편히 지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2. 학교행사

10월 20일, 월요일에는 ‘서운축제’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축제를 앞두고 방과 후에 남아 열심히 연습한 결과를 보여주었습니다. 관현악반의 수준 높은 연주, 사물놀이반의 신나는 한마당, 평생교육활동으로 매주 화요일마다 연습해 온 50명 어머니의 합창, 기타반, 바이올린 독주, 피아노 독주, 1,2학년 실내악 합주, 클라리넷, 섹소폰 독주, 드럼, 가요, 보컬밴드, 뮤지컬 ‘레미제라블’, 북춤, 선생님들의 열창 및 율동 등이 있었습니다. 그 중 정말로 웅장했던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학교축제에서만이 아닌 대회에 나가도 손색이 없을만큼의 작품성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여선생님들 5분이 요즘 신곡들에 맞춰 춤을 추니 아이들의 괴성이 떠날 줄을 몰랐습니다. 흥겨운 시간이었고 아이들에게도 교생실습을 나간 저에게도 또한 여러 선생님들에게도 좋은 추억으로 기억될만한 시간이었습니다.

10월 24일, 금요일에는 ‘독서퀴즈왕 선발대회’가 열렸습니다. 독서퀴즈대회는 예선과 본선으로 치러졌는데, 예선은 각 교과와 필독도서에서 출제된 ‘○, ×’문제로 실시하였으며 패자부활전을 거쳐 50여 명의 학생을 본선 참가 대상자로 선정하였고, 본선은 방학 전에 필독도서로 제시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O. Henry,s Short Stories(오 헨리 단편선)”, “문화로 읽는 세계사”, “우리 조상들은 얼마나 과학적으로 살았을까?”, “NHK인체”, “수학비타민” 등의 작품에서 출제한 주관식 문제로 실시하여 가장 많은 문제를 맞힌 학생을 독서퀴즈왕으로 선발하였습니다. 처음에는 건성으로 임하던 아이들도 문제를 거듭하고 자신이 맞추는 문제가 많아질수록 적극적으로 행사에 임했습니다. 독서한 책에서 문제를 내어 아이들에게 경쟁심을 불러일으키는 이러한 행사가 아이들에게 교육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교생실습을 나가 있는 기간 내내 아이들의 구기대회 예선전과 결승전이 치뤄 졌었는데, 1학년의 종목은 피구였고, 2,3학년 여학생은 발야구, 남학생은 축구로 진행 되었습니다.특히나 얌전할 것 같던 여학생들이 발야구 연습을 위해 아침부터 공을 차며 승부욕을 불태우던 모습은 참으로 의외였습니다. 제가 담임반을 맡았던 1학년 아이들이 피구에서 1등을 하였고, 담임선생님께서는 공부도 못하고 말도 안 듣지만 대견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고 기뻐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3.수업

처음 과학 선생님의 수업을 일주일간 참관하였습니다. 사실 학교 행정상 한 선생님이 일주일동안 10개 반의 수업을 다 맡으실 수밖에 없고, 10번의 수업을 두 번 반복해야하는 일은 고된일이라 느껴졌습니다. 거기에다 시험과 수행평가 채점, 점수 데이터 정리, 아이들 관리, 행사 참여 등의 일로, 선생님이 편한 직업이라 생각해왔던 저에게는 새삼 선생님들이 더 존경스럽게 보였습니다. 2주차에는 기술·가정 선생님의 ‘청소년들의 올바른 소비생활 지도’에 관한 수업에 참관하였습니다. PPT자료를 바탕으로 능수능란하게 수업을 하시는 모습은 아직은 심참인 저에게 부러움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미술과 수업의 ‘고흐’에 관한 단행본을 만드는 수업은 아이들이 더 열정적으로 책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는 것만이 아닌 역사까지 배우는 복합적인 매우 참신한 수업방법이었습니다.

교생실습을 나간 10월 6일부터 3일간 중간고사기간, 그 주 목요일에는 ‘비교평가’가 시행되어 휴교일이었고 축제도 있어 수업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셋째 주 월요일부터 본격적으로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과학과 선생님 수업 참관시에는 아이들이 말을 잘 듣고 목소리도 크게 선생님을 따라 수업에 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5년간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경험이 있어 수업을 하는 데에는 큰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수업을 하려고 막상 아이들 앞에 서니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고 떨리는 감정을 가지고 수업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뒤에서 지켜보시던 과학 담당 선생님께 눈치가 보여 자신 있는 수업을 할 수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조금은 안정이 되어 첫 수업을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제 전공과목 부분인 물리는 진도를 다 나가고 ‘대기의 구조’에 대해서 수업을 진행하였는데 조금은 생소한 부분이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는 많은 지식을 필요로 하니, 수업 준비를 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PPT자료를 준비하여 사진을 보여주고, 아이들의 관심을 끌기위해 동영상도 활용을 하였습니다. 예전보다는 시설이 좋아져 빔프로젝터 기능이 과학실이며 전 교실에 설치되어 수업을 하기에 더 없이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었고, 수업을 하는데 더 편하게 임할 수 있었던듯 합니다. 원래는 1차시와 2차시 수업이 일주일에 한 반에 과학이 두 번 들어 한주면 끝이 나는데, 행사가 있어 2주 동안 진행을 했습니다. 10월 27일, 교생실습 마지막 주에는 여러 선생님 앞에서 수업연구가 있었는데, 교장 선생님, 교감 선생님, 과학과 선생님들을 모시고 수업을 한다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수업 부분은 ‘대기권’의 두 번째 단원인 ‘대기의 구조’였습니다. 아이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먼저 대기와 우주에 대한 동영상을 시작으로, 대기의 중요성과 대기의 구조 내에 오로라가 생기는 과학적인 원인을 얘기하고 유성에 관한 동영상, 지구의 대기가 화성과는 왜 다른지에 대한 동영상 그리고 자외선의 파괴와 지구온난화의 사진을 보여주며 아이들과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45분이라는 시간이 너무나 빨리 지나갔고 성공적으로 수업을 마칠 수 있어 다행한 일이었습니다. 아이들도 너무나 잘 해주었고 선생님들도 아낌 없는 칭찬을 해주셔서 정말 뿌듯한 수업이 되었습니다.

 

4. 소감

요즘의 학교 시설은 예전 제가 학교를 다닐 때와는 다른 급격한 발전을 했습니다. 교실마다 에어컨이 있고 빔프로젝터와 과학실에는 다양한 실험도구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각 교실마다 선풍기가 있었고 조그만 20인치 텔레비전으로 시청각 교육을 하던 제 세대, 제 이전세대에 비하면 요즘의 아이들은 물질의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한 급격한 발전에 발맞추어 교권의 붕괴 또한 심각한 수준으로, TV와 매체에 연일 보도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문제가 학교의 어느 한 부분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예전과는 많이 틀리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옛말에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이 있습니다. 또한 옛날 부모님들은 자식의 스승에게 회초리를 선물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만큼 스승은 예로부터 존경의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현재의 현실은 그렇지 않음을 모두들 잘 알고 있습니다. 자기 자식이 귀한 것은 어느 부모에게나 매한가지입니다. 하지만 자기자식을 과잉보호하고 거기에 더해 학교에 찾아가 선생님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일은 이젠 자주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또한 아이들은 선생님이 채벌을 하려하면 휴대폰을 들이대고 사진을 찍는 일도 있습니다. 불과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12년이 지난 지금의 문제입니다.

그러한 현재의 문제점들을 알고 있기에 교생실습을 나간다는 것이 조금은 겁이 나기도 했습니다.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부유한 지역의 아이들에 대한 선입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교생실습 기간 동안 ‘아이들은 그래도 순수하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그전의 제 생각들이 부끄럽게 느껴지는 시간들이었습니다. 교생실습이 끝나던 날, 교생실습을 다녀온 모든 선생님들이 경험하셨을 이별은 시간은 참으로 슬펐습니다. 아침 일찍 학교에 등교해서 저를 깜짝 놀라게 해주겠노라고 칠판에 ‘선생님, 잘 가세요.’라던 글을 쓰고 교실 곳곳에 풍선을 달고 케익에 촛불을 켜주던 아이들이 정말 고맙게 느껴져 눈물이 ‘핑’돌았습니다. 몇몇의 아이들은 그래도 한 달간의 기간에 정이 들어서인지 눈가에 눈물이 맻힌 아이들도 보였습니다. 세상이 변했지만 아이들은 변하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그런 아이들이 너무나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또한, 아이들이 불쌍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우리반 반장이었던 여자아이는 조그만 몸으로 가방을 매고 터덜터덜 걸어가기에 어디가냐고 물었더니, 힘 없는 목소리로 학원에 가야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름표를 너덜너덜하게 붙여 교문에 잡힌 어느 아이는 밤 늦게까지 학원에 있고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셔서 이름표 오바로크를 하는 일이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에 제가 학원을 좀 늦게 가더라도 가까운 세탁소에 가서 이름표를 달고 오라고 말했더니, 다음날 이름표를 달고 온 것을 자랑하기도 하였습니다. 주말 보강까지하고 무슨 요일은 논술, 또 다른 날은 수학학원, 영어학원을 전전하는 아이들이 가엽게 느껴졌습니다. 지금의 교육현실을 논한다는 것이 어쩌면 아이들에게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학교가 파하면 친구들과 뛰어놀던 그 때가 그립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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